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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중 해병대 청룡부대의 군종활동

Kenny 2024-03-13 6개월전
청룡부대는 1965년 9월 18일 해병 제2연대를 모체로 해병 제2여단으로 창설되었다. 9월 20일 해병 제1상륙사단 연병장에서 결단식을 하였으며 10월 2일 파월 장도에 올랐다.

결단을 앞두고 사단 군종참모실에서는 신현균 목사를 초빙하여 전도강연회를 해서 장병들의 사생관 확립과 정신교육을 실시하였고, 9월 12일 포항기독교연합회의 협조로 파월환송예배를 실시하였다.

1965년 9월 20일 청룡부대 초대 군종참모로 신양섭 군목, 보좌관으로 이동환 군목이  임명되었다. 10월 2일 신양섭 군목은 멜팅지 미 해군수송선, 이동환 군목은 가이가 호에 각각 승함하여 월남에 도착할 때까지 긴 여정의 안전항해를 위해 기도하며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했다. 10월 9일 4,310명의 장병이 월남의 캄란 반도에 상륙하여 중동부 해안지역 동바틴으로 이동하여 주둔했다. 같은 해 10월 17일 신양섭 군목은 캄란지역 청룡부대 본부에 대형 천막교회와 빈 포탄 상자를 이용하여 의자를 만들고, 여단장 이봉출 장군과 많은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청룡교회 창설예배를 드렸다.

1965년 11월 21일 이국에서 처음 맞는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렸다. 이동환 군목은 2대대와 함께 카투산 전투에 종군하여 각 중대를 찾아다니며 출전에 앞서 축복기도를 했다. 1965년 12월 동바틴 기지를 지키던 잔류부대에서 여단장 이봉출 장군의 제의로 저녁식사 때마다 장군 식당에서 전 여단 장병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청룡부대가 개선 귀국할 때까지 8년 5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1965년 11월 20일 신양섭 군목은 민사참모로 임명되어 군종업무와 민사업무를 겸무하였고, 월남 평정계획의 지원과 한월 유대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월남의 구호사업과 건설을 도와주며 작전지역 내에 있는 전략촌 Montagocle 고산족과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였다.

1965년 11월 7일 부대 본부교회에서 기독장교회 창립총회를 열고 회장 이봉출 준장, 부회장 이병화 중령, 총무 차성모 소령, 간사 전의열 대위를 선출하였으며, 매주일 오후에는 신구교가 함께 모여 성경연구와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12월 19일 70여 명의 회원이 모여 신우회 창립총회를 열고 회장 조석현 중사, 부회장 이기홍 하사, 서기 견종재 병장, 전도부장 강창규 병장, 음악부장 정명선 하사, 봉사부장 정용세 일병을 임원으로 선출하고, 월 1회 헌신예배와 월남인 전도 및 입원환자 위로방문을 실시하였다.

신양섭 군목은 1965년 성탄절에 5명에게 세례를 주었고, 순회문고를 운영하였다.

1966년 4월 10일 청룡교회에서는 부활절예배와 세례식이 있었고, 동년 6월 15일부터 매월 생일잔치가 전투지역에서 베풀어졌다.

1966년 11월 3일 김용원 군목이 신양섭 군목 후임으로 부임했다. 그는 전지에서 두 번째 추수감사절을 맞아 병상에서 고생하는 수용중대, 육군치료중대, 추라이 병원을 방문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감사절의 기쁨을 나누었다. 전지에서 맞는 두 번째 성탄절에는 쾅나이 빈손 교회 교우들과 미군과 청룡부대 장병들이 김연상 장군 환영예배를 겸한 성탄 축하예배를 드리며 월남의 빈손교회에 야전 풍금 1대를 기증했다.

1966년 10월 16일 부대가 투이호아에서 추라이로 이동하여 교회를 세우고 봉헌예배를 드렸다. 당시 청룡부대장 이봉출 장군의 술회에서 청룡교회의 여러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지휘하던 부대는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를 못했다. 캄란에서 투이호아, 투이호아에서 다시 북방 추라이 지구로 전진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싸우는 장병들의 신앙심을 북돋우어 줄 수 있었음은 한편 가치있는 고생이기도 했다. 월남에는 아직 기독교가 우리나라처럼 크게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 한국군 부대가 이동하여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부대장병들을 위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근 월남인에 대한 기독교의 전도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1965년 10월 9일 캄란만에 상륙한 청룡부대는 진지를 구축하면서 버려진 판자 쪽과 탄약상자들을 주워모아 의자를 만들고 분대 천막 둘을 이어 천막교회를 세웠다. 이국 하늘 아래서 첫 예배를 드린 감회가 컸고 기독장교회, 신우회가 처음 조직되었다. 이 보잘 것 없는 교회가 상륙 직후의 착잡했던 장병들의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데 얼마나 큰 힘과 위안이 되었던가 생각하면 아직도 그때의 정경이 생생히 떠오른다. 교회의 자리가 미처 굳기도 전에 투이호아 지구로 이동해야 했다. 이 푸옌성 일대는 아담한 투이호아시가 일부 미군과 월남군에 의해 장악되고 있을 뿐 20여 년을 공산 치하에서 버려진 땅이었다. 피투성이의 격전을 치르고 한편으로는 풀 한포기 없는 뜨거운 사막 위에 천막교회를 지었다. 둥근 천막과 호속에는 기독장교회와 신우회원들이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이 이어져 나갔다. 16일 간의 피어린 격전이 우리의 승리로 끝나자 푸옌성 일대도 안전지대로 바뀌게 되었다. 투이호아시의 각 교회에서 찬양대와 목사님들이 부대를 자주 방문하여 합동예배도 드릴 수 있었다. 부대가 다시 북부 추라이로 이동하자 미 해병대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교회를 짓게 되었다. 비둘기집보다 더 고운 채색을 한 이 교회는 지난 날 천막교회에 비한다면 야전부대에 오히려 사치로운 감도 없지 않았다. 이 지방은 특별히 공산 월맹과 가깝고 공산주의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이 딴 어느 지역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잘 단장된 이 교회는 주민들에 대한 기독교의 시위가 되기도 하였다. 이 청룡교회의 헌당식이 추라이 지구와 쾅가이성의 한·월·미 성직자와 교우들이 합동으로 거행하여 비록 말은 서로 통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같이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는 흐뭇한 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김용원 군목은 츄라이 주재 청룡휴양소에 자주 방문하여 도의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67년 1월 29일 학습 1명과 세례 1명을 주었고, 3월 26일 부활절에 한월 연합부활절예배를 청룡교회에서 드렸다.

1967년 2월 14일(주일)~15일 외신들로부터 ‘신화를 남긴 해병’이란 찬사를 받으며 한국 해병대의 위용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 짜빈동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 청룡부대 제11중대가 북 베트남 정규군 2개 연대 규모를 격멸시켰다. 다음은 짜빈동 전투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에 기여한 김기홍 중위(예비역 해병소장, 장로)의 증언이다.

3개월 반 동안의 전투준비 기간 내내 아침에는 기도와 시편 한편 암송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기도를 드리며 하루 일과를 마치곤 했다. 전투진지에서는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67년 2월 14일 주일, 신앙적으로 갈급한 나머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헬기를 타고 청룡부대 본부교회에 갈 수 있었다. 예배를 드리고 귀대한 그날 저녁 적 정찰대의 공격을 받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조명탄이 밝게 비추고 있는 전장을 확인해 보니 적 정찰대가 아군이 매설한 지뢰를 밟아서 1명은 철조망에 걸린 채로 죽어있고 3명이 개활지를 향해 도주하고 있었다. 이때 적은 도주하면서 결정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정찰 중 상대방에게 위치가 노출될 경우에 소속부대로 도주하는 것을 절대로 금하는 전술원칙이 있다. 그런데 그때 발견된 적 정찰대가 적의 본대 2개 대대 규모가 집결하고 있는 정글 속으로 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적 정찰대가 도주하는 정글을 향해 105미리 포병 화력을 요청해서 180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공격 대기 중이던 적의 본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결과적으로 이 상황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적 정찰대가 패퇴하고 나서 적의 대공세 징후를 판단하지 못한 가운데 한동안 정막이 흘렀다. 이윽고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적의 포탄이 아군 진지에 비오듯이 떨어지는 가운데 적에게 이중 삼중으로 포위되었다. 순간적으로 이젠 죽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적의 포격 때문에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이 다급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다. 바로 이 전투 3일 전에 서쪽 1km 지점에 위치한 ‘돌산’지역을 정찰했던 아군의 보고에 의하면, 적은 그 지역에 포진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적의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과 그때의 정찰보고 내용이 일치하고 있었다. 즉시 적의 포탄이 날아오는 ‘돌산’ 쪽 정글 지역에 있는 적의 포진지를 향해 100여 발의 포격을 가했다. 그 순간 적의 포진지가 마비되었다. ‘돌산’ 뒤에 숨어서 여유롭게 아군을 공격하던 적의 포진지가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이와 같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지혜를 주셨다. 이 전투에서 적의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고, 적이 겹겹이 포위해 올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위해 친해 싸워 주셨을 뿐이다.

1969년 3월 19일 다낭에 있는 한국인 기술자들을 위해 월남의 니엔리 군목 협조로 한인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월남빈손교회 하기 성경학교 기간에 점심식사와 쌀 5포, 트럭 2대를 지원하였고, 12월 2일 노래하는 선교사 형제 Louis Palermo와 Phil Palermo 목사를 초청하여 치료중대와 수용중대 환자를 위문하였다. 1967년 11월 26일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리고 헌금 15불 75전과 OCU가 마련한 성금 30불을 한재(旱災)로 어려움 중에서 재건하는 전북 순창읍장로교회에 송금하여 모국의 교회를 도왔다. 전장에서 세 번째 맞는 성탄절에는 축하예배를 드린 후 헌금 123불을 서울 대방동 자애원에 송금하여 고국의 불우한 고아들을 도왔다. 그의 재임기간 중 김정근 군목이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1967년 12월 20일 주계명 군목이 군종참모로 부임하여 호이안에 여단 본부교회를 신축하였으며, 청룡부대 군수지원부대인 11군수지원대대에 교회를 신축하고 16명이 모인 가운데 김정근 군목의 인도로 창설예배를 드렸다. 주계명 군목은 대민지원으로 의류 600파운드, 옷감 2상자, 올갠 3대, 종 1대, 선풍기 2대, 함석 20장, 농기구 4상자, 화목 6트럭, 연료 250통, 학용품 13상자, 재봉틀 3대, 재봉기구 4상자, 비누 4상자, 건축자재 3트럭, 구호약품 600적, 압맥, 백미, 석유, 기타 60톤, 인형, 장난감 250명 분, 차량 지원 16대, 인력 지원 150명, 위안회 10회, 장학금 4만 피아스타를 전달하여 대민유대를 강화하였다.

1969년 1월 24일 이동환 군목이 군종참모로 부임한 후 미 헬기 항공모함 Iwojima함에서 한국 해병대 상륙군과 함께 한미 합동상륙작전 기념예배를 인도했다. 그는 1969년 5월 25일 월남을 방문한 백낙준 박사를 초청하여 여단본부교회에서 특별예배를 드리기도 하였다. 1969년 11월 30일 김사겸 군목이 보좌관으로 부임하였고, 1970년 1월 25일 백수현 군목이 군종참모로 부임하여 전방중대 예배위원을 임명하였다.

백수현 군목은 공병참모의 협조를 얻어 종각을 건립하였고, 다낭 한인교회 신축 때는 트럭 3대와 작업원 20명을 지원하였다. 1970년 5월 22일 한경직 목사가 월남을 방문하였을 때 그를 초빙하여 여단본부교회에서 종교강연회를 하였다. 백수현 군목은 청룡 4중창단을 조직하여 환자위문, 장병위문을 실시토록 하였고, 5월 17일 미 해병대 창설 195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하여 성가를 불러 주었다. 미 24군단 부사령관은 성가를 불러준 데 대한 감사로 군종참모에게 감사장을 보내기도 하였다.

청룡부대 기독장교회는 회장 이재규 중령, 부회장 이중년 소령, 총무 하재송 소령을 선출하고 고문으로 최해원 중령을 추대하였다. 신우회는 회장 이재균 상사, 총무 이흥춘 중사, 전도부장 김승봉 상사, 봉사부장 이재상 상사, 음악부장 이점만 하사가 선출돼서 활동하였다. 백수현 군목은 군종장교 분산활동 계획을 수립하여 군종장교들이 업무를 분담해서 일하도록 하였다.

1971년 2월 28일 군종참모로 차흥식 군목이 백수현 군목의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순회교육과 보호사병 선도활동을 강화하였고 호이안교회 신축을 위해 차량 및 자재 지원과 호이안 오뎅 중고등학교에 장학금 2만 피아스트를 전달하였고 성종 오르간 2대를 호이안 교회에 기증하였다.

1972년 1월 30일 한월 합동 청룡부대 고별예배가 한인 기술자와 월남인 신자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룡부대 교회에서 열렸으며 예배 후 다과회를 열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청룡부대 군종업무는 8년 동안 월남에서 실시되었다. 신자와 불신자를 망라하고 청룡부대 장병들은 누구나 한결같은 진지한 태도로 자신이 처한 험난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월남에서의 군종활동은 여러 부대를 순방하여 예배드리고 장병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격려해 주는 일과 민간교회를 통한 봉사활동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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